본문 교육과정과 초기 경력 1906년에 그의 전 가족이 뉴질랜드에서 영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1차 대전 중에 영국 공군에서 복무를 마친 후, 런던의 건축 협회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졸업 후 그는 1925년 파리 장식미술박람회를 참관하고 전시작품들로부터 큰 인상을 받았다. 그는 오래 전부터 골동 유리제품에 상당히 매료되어 있던 터였지만, 1931년에 런던의 왕립학술원에서 열린 ‘스웨덴 장식미술전’을 참관하고 나서 현대적 유리공예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1931년에 정부의 지원으로 예술가와 제조업자들 간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인, 예술 및 위원회와 관계가 있었던 그는, 위원회의 주선으로 런던에 있는 화이트프라이어 유리공장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그 회사를 위해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의 실험적인 디자인을 다수 제작했다. 1932년에 그는 또 다른 유리 제조업체인, 스티븐스 앤드 윌리엄스를 알게 되었다. 같은 해에 그는 스태퍼드셔에 있는 도기 제조업체인 웨지우드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스티븐스 앤드 윌리엄스사와의 경우처럼, 그는 웨지우드사와도 파트타임 형식으로 그 회사의 생산 시설을 연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훈련된 공예가가 아니었던 그가 디자이너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터득한 소재 및 제조 공정에 대한 지식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본문내용 하여 다른 나라들, 특히 좀 더 진보적이었던 프랑스의 디자인 수준과 일치시키는 것이었다. 그의 선구적인 모더니스트 디자인은 그 당시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많은 갈채를 받았다. 그는 또한 컨설턴트 디자이너라는 당시 영국에 새롭게 등장한 전문직이 산업계에서 자리를 잡는 데 일조를 했다. 교육과정과 초기 경력 1906년에 그의 전 가족이 뉴질랜드에서 영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1차 대전 중에 영국 공군에서 복무를 마친 후, 런던의 건축 협회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졸업 후 그는 1925년 파리 장식미술박람회를 참관하고 전시작품들로부터 큰 인상을 받았다. 그는 오래 전부터 골동 유리제품에 상당히 매료되어 있던 터였지만, 1931년에 런던의 왕립학술원에서 열린 ‘스웨덴 장식미술전’을 참관하고 나서 현대적 유리공예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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