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김우중이 누구인가?
2.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란?
3. 김우중의 리더십 &
성과
4. 결론
본문
1) 대우 김우중 회장의 동기부여 ① 세계경영을 강조한 확장형
리더십에 의한 동기부여 과거 한창 대우가 잘 나갈 때 대우는 외환위기를 위기와 위협으로 보지 않고 ‘기회’로 보고 그 전까지 추구하던
세계경영을 계속 고수하였다. 그러나 대우는 이미 그전까지의 지속적인 세계경영으로 인해 대우 그룹의 덩치만 커져 있을 뿐 실속에 대해 이미
이런저런 말이 많을 때였다. 과다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많은 해외법인을 창설하고 많은 공장 또한 건립해 가장 많은 해외법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해외법인들이 아직 현지에 뿌리내리지도 못하고 생긴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큼 관리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92년 당시 대우는
16조원의 부채를 안고 있었는데 이는 자기자본의 38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이런 부채를 안고 IMF를 맞이하였고 그 이후에도 다른
기업들이 모두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투자를 하지 않고 자사의 구조조정을 하고 회사의 규모를 최소한으로 만들 때에도 대우는 지속적인 세계경영을
외치며 자신의 덩치를 키우는데 급급했다. 그 결과로 대우의 자산은 눈에 띄게 증가하고 규모도 커졌지만 IMF기간에만 대우의 부채는 17조원이
증가하는 등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고 더 이상의 세계경영을 외칠 수 없게 되고 대우의 분위기는 고스란히 대우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표출이 되었다. IMF로 인해 다른 기업들이 모두 줄줄이 도산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할 때에도 대우는 하지 않았기에
직원들의 대우에 대한 믿음과 열정은 유지 할 수 있었으나 무리한 경영으로 인한 실속 없는 결과(수많은 해외법인과 그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대우의
재무관계)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대우 안팎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었다. 결국 대우의 구조조정 방안이 나오고 구조조정 방안에 대한 비합리성에 노조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대립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또 구조조정 전까지는 혹시나 라고 생각하며 대우를 믿은 직원들이 구조조정과 함께 김우중 회장이
전경련회장직에서 사퇴하는 등 그동안 애써 감춰놓았던 대우의 위기를 실제로 겪게 되자 대우 그룹은 더 이상 통제가 잘 될 수가 없었다. 이는
세계경영에 대한 대우 그룹의 목표가 무너짐과 동시에 그 목표를 동기부여로 삼고 일하던 직원들의 의욕을 뺏어가는 계기가
본문내용 년까지는 한성실업에 근무했다가, 1967년 서울 중구 충무로에서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자본금은
500만원이였지만, 동남아시아, 미국 시장에서 성공해, 1970년대에 대우건설, 대우증권, 대우전자, 대우조선 등을 창설, 신흥 재벌이 되었다.
그러나, 1998년의 IMF 구제금융사건으로 한국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고, 그로 인한 여파로 부채비율이 600%이상이었던 대우그룹은 1999년
8월 워크아웃을 신청하였다. 당시 부채는 500억 달러였다. 검찰청에서의 수사를 피하기 위해 출국한 후 도피생활을 하였으며, 중국 등지에서
호화롭게 생활을 했다는 얘기와, 반대로 유럽 등지의 3류 호텔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어렵게 생활했다는 얘기가 있다. 2005년 6월 14일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검찰의 조사를 받았으며,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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